머드게임의 추억, 블로그 이름 바꿈 기타게임

타임 스트레인저 익스프레스



타임 스트레인저가 무엇이냐, 하면 요즘 게이머들에겐 좀 생소한 개념이지만 일단 머드(MUD)라는 게임 장르부터 시작해야겠다.

머드게임이란 건 말하자면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MMORPG다. MUD 자체가 Multy-User Dungeon이라는 뜻인데, 사실 이 이름은 최초로 개발된 머드게임(아직 장르명이 없었을 때)의 제목이기도 했다.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리니지나 와우같은 걸 PC통신상에 구현했다고 보면 간단하다.

문제는 무엇이냐, PC통신 클라이언트(이야기나, 좀 이후에 나온 새롬 데이터맨 같은 프로그램)상에서 구현되는 MMO다보니 오로지 텍스트로 모든 것이 진행되는 것이다. 게임의 인터페이스도 직접 단어로 이루어진 키워드를 입력하는 식이다. 대략 아래와 같다.







<뒷골목>
당장이라도 꺼질 듯한 가로등과 멀리서 들려오는 취객의 싸움소리, 근처 클럽에서 들려오는 쿵짝거리는 음악소리가 섞여있는 곳입니다. 자신의 몸을 지킬 수단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어야 어깨를 겨우 펴고 걸어다닐 법한, 꽤 위험해보이는 곳입니다. 동쪽에는 클럽 블루 오이스터가, 남쪽에는 환락가가 있습니다.

[600/157/121] 동
당신은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클럽 블루 오이스터>
시끄러운 음악때문에 당신은 저절로 귀를 막게 됩니다. 어지럽게 춤추는 조명을 따라 젊은 남녀들도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습니다. 둘씩 짝을 지어, 굳이 남녀가 아니라 남남, 혹은 여여끼리 짝을 지어 클럽을 빠져나가는 젊은 커플들도 눈에 보입니다. 이 안에는 마피아의 비밀 사무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클럽 자체도 출입증이 없는 이의 입장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뚫어질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집니다. 당신의 행색이나 드레스코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클럽 기도들이 월급을 받는 건, 출입증이 없는 당신같은 사람을 쫓아내기 때문입니다.

우락부락한 체구의 기도가 서있습니다.

[600/157/120] 기도 발차기
당신은 기도의 옆구리를 걷어찹니다! 기도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집니다.
당신은 기도를 강하게 베었습니다.
당신은 기도를 강하게 베었습니다.
기도가 당신을 때렸습니다.
기도가 당신을 때렸습니다.
기도가 당신을 때렸습니다.

[510/157/120] 기도 발차기
당신은 기도의 옆구리를 걷어찹니다! 기도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집니다.
당신은 기도를 강하게 베었습니다.
당신은 기도를 혼신의 힘을 다해 베었습니다.
기도가 당신을 때렸습니다.
기도가 당신을 강하게 때렸습니다.
기도가 당신을 때렸습니다.

[406/157/120] 기도 발차기
당신은 기도의 옆구리를 걷어찹니다!
기도가 갑자기 숨이 막힌 듯 얼굴이 붉게 물들어 오르더니 무릎을 꿇습니다.
당신은 있는 힘껏 무릎을 꿇은 기도의 얼굴을 후려찹니다!
기도는 큰대자로 뻗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싸움이 끝났습니다.

[406/157/120] 전부 갖 시체
당신은 기도의 시체를 뒤집니다. 
72 달러를 얻었습니다.
가죽장갑을 얻었습니다.







대충 이런 식이다. 굳이 이렇게 머드게임의 개념부터 설명하는 이유는, 내 게임 라이프의 오리진이 바로 머드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제목은 시간여행자, 영어 제목은 타임 스트레인저. 그 당시 천리안 시간여행자의 '다리풍'하면 아주 유명한 비매너유저인데, 그게 바로 나다. 그때 내게 기분 상한 적 있으신 분이 혹시 글을 본다면, 먼저 사과부터 드리고 싶다. 내가 기껏 국민학교 4학년이었고, 내 생각에도 어린 시절의 내가 몹시나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인 성격이긴 했다. 물론 지금은 안 그렇다. 헤헤...

지금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장르지만(사실상 국내 MMO는 공급포화상태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페르시아 왕자 2가 한창 최신게임이던 시절에 다른 유저와 협동하고 또는 PVP를 벌이면서 렙업하고 강해지는 게임은 그야말로 대단한 경험이었다. 방학때면 아주 팬티가 노래질 때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그것만 했고, 당연하지만 전화료 폭탄 덕분에 강력한 등짝스매싱을... 맞은 적은 없었다. 내가 어릴 때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이 놀랍도록 관대한 분들이셨던 것이 컸던 것 같다. 어쨌든 이거 관련해서는 잔소리 한 마디 들은 기억이 없다.

각설하고 난 굉장히 복고지향적인 취향인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상이나 매체, 혹은 장르의 오리진을 파고 들어가는 데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생인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방영했던 퍼스트 건담을 죽도록 물고빠는 것도 이런 장르의 오리진을 파고 들어가는 성격 때문이며, 그 오리진에 매력을 느끼는 취향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을 즐기는 나의 오리진...을 파고든다면 결국 여기에 도달하게 된다. 시간여행자라는 머드 게임에.




MMO를 정말로 즐기게 되었다는 의미에서의 오리진이라면 시티 오브 히어로가 나의 오리진이겠지만, 내 게임 라이프의 오리진을 따지고 든다면 시간여행자에 도달하게 된다.

이젠 서비스도 중단되었고, 소스코드조차 남아 있지 않아 사설 서버도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사라진 머드게임, 하지만 이게 내 오리진이다.

그 시절로부터 2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가끔 그 게임의 제목처럼 그때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든다.

특급열차를 타고 스테이션(게임 내의 '마을'에 해당하는 지역)에 도착해서, "안녕하세요~ 외침"이라는 인사로 그날의 모험을 시작하고 싶다.

타임 스트레인저 익스프레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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